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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의 문제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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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01 월 ( 회) 열린북한
2012-08-22 12:19:22   |   View : 12985  
100114 이산가족의 문제
당신이 누려야할 권리를 찾아갑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의「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보내드리는 ‘북한인권이야기’ 시간의 홍성일입니다.
청취자여러분, 어느덧 2010년의 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설에 어떤 일을 하십니까? 한국에서는 민족대이동이라 불릴만큼 온 민족이 고향을 찾아 이동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5시간 거리이지만 명절 때는 차가 막혀서 10시간, 12시간씩도 걸립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도 부모님과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고향을 방문합니다. 가족의 사랑을 느끼고, 고향의 따뜻함을 느끼기 위해서 오랜 시간의 여정도 기꺼이 감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는 가까운 곳에 고향을 두고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자동차로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휴전선에 가로 막혀 갈 수 없는 곳으로 남아있습니다.
청취자여러분, 오늘의 인권방송 시간에는 우리 주변에서 이별의 아픔을 가슴에 간직한 체 반 평생을 살고 있는 이산가족과,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아픔을 지닌 실향민들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인 “이산가족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10년은 남한과 북한이 전쟁을 겪은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60년 전 6.25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전쟁을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뿐 아니라 휴전협정이라는 큰 장벽 앞에 남과 북은 3.8선에 가로막혀 아무런 왕래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나 다른 체제와 사상으로 인해 서로가 하나가 되기에는 점점 더 많은 장벽만 쌓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취자여러분, 부모, 형제 등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것만큼 큰 슬픔은 없습니다. 또한 그 슬픔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해결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입니다. 아마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 중 부모님을, 혹은 자녀를, 형제를 잃어보신 분들은 그 슬픔이 얼마나 큰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6.25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이산가족이 서로 만나는 것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국가는 이산가족에게 지속적인 상봉의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여야 합니다. 또한 이산가족 상봉이야말로 남과 북 서로가 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하며, 나아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전쟁을 겪은 당사자들, 이산가족 1세대는 이미 60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꾸준한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것은 국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당국은 정치적인 이념을 넘어서서 이산가족 상봉을 계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산가족 상봉이 어떻게 시작되게 되었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문제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잠시 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0초 음악과 전하는 말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오랜 세월동안 남과 북은 체제경쟁으로 인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모른 체하고 지내왔습니다. 이산가족의 상처를 달래기에는 전후 복구할 것들과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전쟁을 시작했는지, 누가 더 나쁜지 서로를 원망하고 비방하기에 더 바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1985년 처음으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비록 일회적인 행사에 그치고 말았지만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 행사였습니다. 이 후 2000년부터 2009년까지는 17번의 이산가족 직접 상봉과 4번의 화상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매 번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면 상봉 장소는 눈물바다이며 서로 반평생 마음속에 지녔던 말을 한다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루, 이틀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의 만남이 끝나면 이제는 또 영영 소식 한 통 보낼 수 없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야만 합니다. 그나마 만남을 가질 수 있었던 이산가족은 가족의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산가족은 지금도 눈물로 가족을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만남을 가진 사람은 남과 북 통틀어 2만여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는 이산가족 수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입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산가족들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비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남한의 경우 헤어진 가족을 만나겠다고 신청한 당사자가 13만명 정도 되지만 이 중 4만여 명이 이미 사망한 상태입니다. 신청자 중 70대 이상이 75%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이것은 북한의 이산가족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산가족 상봉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동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일회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아니라 주기적인 만남과 서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는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은 남한과 북한에서 교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산가족 행사는 계속적으로 금강산에서만 열리고 있습니다. 북한의 이산가족을 통해 남한의 경제 성장과 문화의 발달이 전해지는 것이 두려워 계속적으로 북한에서만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습니다.
또한 60년 동안의 슬픔은 화상 상봉으로는 절대 달랠 수 없습니다. 먼저 직접 만난 후 계속적으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는 화상상봉이 이루어질 수는 있겠지만 화상을 통해 첫만남을 가진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후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편지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생사여부를 알았으니 가족이 안부를 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일회성에 그치는 상봉을 넘어서서 계속적인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보완되어야 할 것들이 많은 숙제입니다. 이산가족 1세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가족 소식을 들을 수 있고 정든 고향을 밟아볼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하겠습니다.
어느덧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북조선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찾는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북한인권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글 :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 제작 : 열린북한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