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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와 인권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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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02 월 ( 회) 열린북한
2012-08-23 20:50:35   |   View : 7506  
100211 < 국군포로와 인권 >
 
당신이 누려야할 권리를 찾아갑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의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보내드리는 북한인권이야기시간의 한광일입니다. 벌써 올해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60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간동안 남과 북은 음식 문화, 이념, 언어 등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많은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국군포로의 문제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국군포로와 인권에 대한 방송을 하려고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혹시 국군포로를 아십니까? 국군포로는 해방전쟁 시기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북한에 억류된 남한의 포로병을 의미합니다. 국제 협약인 제네바 협약 제118조에 따르면 포로는 적극적인 적대행위가 종료된 후 지체 없이 석방되고 송환되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전쟁이 끝난 이후 모든 포로는 자국으로 송환되어야 하는데요, 이에 따라 한국전쟁 이후 남한은 북한 인민군을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냈지만 북한은 소수의 남한포로병만을 돌려보냈습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고 여전히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들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 중 거주지가 함경북도인 경우에 많은 국군포로병을 보셨을 것입니다. 유독 국군포로병이 함경북도에 많은 이유는 전쟁 이후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탄광이 많은 함경북도로 국군포로를 강제로 보냈기 때문입니다. 탄광에서의 강도 높은 노동은 그 동안 북한을 탈출해 온 국군포로들의 증언과 함경북도에 거주하던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국제사회에 상당 부분 알려져 있습니다. 국군포로들은 햇볕도 들지 않는 탄광에서 거의 먹지도 못하고 종일 탄가루와 씨름하다 진폐증에 걸려 신음하거나 심지어는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국군포로들은 한마디 불평을 제기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토대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불평을 제기했다가는 그 즉시 반동분자로 몰려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국군포로들은 결혼 또한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겨우 결혼을 해서 자녀를 갖게 되더라도 그 자녀는 토대의 한계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단 한명의 국군포로도 북한에 존재하지 않다고 거짓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994년 한국으로 입국한 국군포로 조창호 소위를 비롯해 70여명의 국군포로병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바로 그들의 증언이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더 이상 북한당국은 국군포로의 인권을 유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과거를 인정하고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그리고 그들을 그리워하는 가족들을 위해 북한당국은 국군포로병들을 자유롭게 풀어줘야 할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잘못된 과거의 과오를 인정하고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덧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북조선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찾는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북한인권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제작 : 열린북한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