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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의 인권문제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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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05 월 ( 회) 열린북한
2012-08-23 22:57:38   |   View : 6653  
국군포로와 인권문제
 
당신이 누려야할 권리를 찾아갑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의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보내드리는 북한인권이야기시간의 한광희입니다.
 
20053, 중국으로 탈북한 국군포로 박봉근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고향집 뒤뜰에 느티나무가 있었지. 봉주, 봉두, 봉식이 막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구나.” 이내 박봉근의 눈가에는 물기가 어렸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전화를 받던 늙은 동생들의 목소리도 촉촉히 젖어들었습니다. 6.25전쟁 때 포로가 되어 북한으로 끌려간지 55년만에, 박봉근은 동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였습니다. 이후 박봉근은 무산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탈출하려다 보위부에 체포되었고, 끝내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6.25전쟁 이후 지금까지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도 국군포로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2년에 국군포로 문제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때도 전쟁당시 행방불명된 군인이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이 강제로 억류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의 주장대로 국군포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청취자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겁니다. 특히 국군포로들이 무리배치된 온성군 상화청년탄광, 무산탄광, 회령 학포탄광 주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더욱 잘 아실 겁니다. 외부 세계에도 북한 당국이 국군포로들을 강제로 억류했다는 증거는 많이 있습니다. 우선 국군포로들이 1994년부터 북한을 탈출하기 시작해 200812월까지 76명이 탈출했습니다. 이들의 존재는 북한 당국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서도 국군포로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지난 20074월 공개된 미국 국방부 비밀해제 문건에서, 6.25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 명이 북한에서 쏘련으로 끌려간 것이 확인됐습니다. 냉전이 끝난 직후 미국과 러시아는 6.25전쟁 시기의 미군 포로 문제를 조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군포로의 존재가 드러난 것입니다. 문건에 따르면 국군을 포함한 한국인 납북자 12천명이 북한에서 소련으로 보내졌으며, 이들은 도로공사와 비행장 건설 등에 내몰려 많이 죽었습니다.
 
6.25전쟁이 끝날 무렵 북과 남은 포로송환협정을 맺어 포로들을 돌려보내기로 합의 했습니다. 당시 한국 당국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밝힌 포로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국군포로의 일부인 87백여 명만을 한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6.25전쟁 당시 4만 명이 넘는 국군이 행방불명자로 신고 되었는데, 전사 처리된 사람을 제외한다면 약 2만 명에 달하는 국군포로들이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동안 많은 국군포로들이 죽었고 현재는 560명 정도가 살아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더 늦기 전에 살아 있는 국군포로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죽은 포로들은 그들의 유해라도 돌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반백년동안 고통을 겪어온 국군포로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사죄하는 길입니다.
어느덧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북조선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찾는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북한인권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