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top버튼

전체 방송

북한인권 시민교육

sidebanner

외국인 권리 ( 일반 )
년월 (회차) 방송듣기 대본보기 방송국
2010 년 05 월 ( 회) 열린북한
2012-08-23 23:00:23   |   View : 7526  
외국인의 권리
 
당신이 누려야할 권리를 찾아갑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의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보내드리는 북한인권이야기시간입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거주와 이전의 자유가 확대되어 나타난 결과입니다. 사실 한국은 단일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외국인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성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나라와 교류를 하면서, 민족이 달라도 모두 인간으로서 기본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은 외국인의 권리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외정책은 대내정책의 연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북한 당국이 자기 인민들에게 취하는 정책을 보면 대외정책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북한 당국은 자기 인민들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데요, 외국인들에게도 똑같은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1965년에 월북했다가 40년 만에 북한에서 벗어난 주한미군 출신 젱킨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젱킨스는 월남전에 나갈 것이 두려워 순간적인 충동에 의해서 비무장지대에서 분계선을 넘었습니다. 사실 젱킨스는 죽어서도 북한 땅을 벗어날 수 없었지만 그의 부인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젱킨스의 부인은 북한 당국이 납치한 일본 여성으로, 2002년 북일 수뇌회담에 따라 일본으로 귀국했습니다. 그로부터 18개월 뒤에 젱킨스도 부인의 곁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북한식대로 말하면 젱킨스는 의거입북을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우도 잘해줬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젱킨스에 따르면 자신과 같은 미군들이 있었는데, 북한 당국은 바른 사상을 주입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적인 자아비판과 폭행을 가했고, 이에 저항하면 강제수용소로 끌고 갔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소한 행동까지도 감시받으며 수십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젱킨스는 북한으로 간 것은 최악의 실수였다면서, ‘북한에서 받은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젱킨스의 경우는 특별한 사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합법적인 신분을 가지고 북한에 들어간 외국인들은 어떨까요? 이들은 주로 외교일꾼들과 그들의 가족들 또한 국제구호기구 요원들로 평양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평양에 한해서 비교적 이동이 자유롭지만 역시 보위부의 감시하에 놓여 있습니다. 보위부는 이들이 움직일 경우 미행을 하며, 요시찰 대상의 경우에는 24시간 밀착감시를 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외국인들은 많은 부분에서 권리를 제약받기 때문에 북한에서 살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 생활하는 사람 외에는 북한에서 살려고 하는 외국인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북한 당국도 외국인들을 꺼리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입으로만 지상낙원이라고 하지 말고 외국인들도 마음놓고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어느덧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북조선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찾는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북한인권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