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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방송

북한인권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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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시기 랍북자 문제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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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년 07 월 ( 회) 자유조선
2012-08-26 14:51:13   |   View : 8650  
72. 전쟁시기 랍북자 문제
 
아나운서: 이 방송은 북조선의 인권유린 실태를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 남조선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와 자유조선방송이 함께 제작한 것입니다.
음악: 시그널
해설: 인권깜빠니아’,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 ‘인권이란 무엇일까요?
(UP/DOWN)
 
안녕하십니까? 자유조선방송의 송현정입니다. 오늘 인권깜빠니아 주제는 전쟁시기 랍북자 문제입니다.
 
남조선에서는 지난해에 6.25전쟁랍북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습니다. 이 위원회는 지난달 말에 6.25전쟁 61주년을 계기로, 북조선 당국이 일으킨 랍북사건의 진상규명과, 랍북자와 그 가족들의 피해조사 및 명예회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랍북자 피해신고를 올해까지 남조선과 해외공관에서 받기로 했습니다.
 
사실 6.26전쟁이 일어난 지도 50년이 훌쩍 지나서 전쟁시기에 일어난 랍치 문제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북조선 당국은 왜 남조선 인민들을 랍치한 것일까요?
 
김일성이 남침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북조선은 쏘련의 주도아래 사회주의 체제로 급속히 전환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 재산이 몰수되거나 종교계, 인테리 계층에 대한 탄압이 이어지자 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신했습니다. 인테리들의 대대적인 탈출로 인재가 부족하게 되자 김일성은 조직적으로 남조선 인사들을 랍치하기에 이릅니다. 김일성이 1946년에 발표한 남조선에서 인테리들을 데려올 데 대하여라는 담화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북조선 당국은 전쟁 전까지 공작원들을 남조선으로 보내 지식인들을 회유했습니다. 그런데 공작이 잘 먹히지 않자 전쟁시기의 혼란을 틈타 남조선 지식인들을 조직적으로 랍치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96000여 명의 민간인 랍치자 중에 80% 가량이 집이나 집 주변에서 랍치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는 북조선 당국이 개인별 인적사항을 미리 파악해 랍치했다는 말입니다. 매우 조직적으로 남조선 민간인에 대한 랍치가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조선 당국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랍치했지만 그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휴전회담을 할 때 유엔군이, 남조선에서 랍치해 간 사람들의 행방을 알려주고 그들을 송환하라고 북측에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북조선 당국은 우리의 사상과 리념에 동조해 의거입북한 사람만 있을 뿐 랍치자는 없다면서 정치적 문제이니 더 이상 론의하지 말자고 선을 그었습니다. 당시 유엔은 휴전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랍북자 문제를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아 결국 랍북자 문제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북남간 대결이 치렬해지면서 남조선 내에서도 랍북자 문제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였습니다.
 
오래도록 묻혀 있던 전쟁시기 랍북자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0년 북남 수뇌회담 직후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인도적 차원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을 모두 북쪽으로 돌려보내자, 이것을 보고 전쟁시기 랍치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희망을 품고 다시 랍북자들의 생사확인과 송환을 촉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은 전쟁시기에 랍치한 사람들은 없다며 생사확인조차 제대로 해주지 않았습니다.
 
남조선에 있는 랍북자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닙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려주고, 혹여 죽었다면 그 유해라도 송환해 달라는 것입니다. 북조선 당국은 동포애와 인도적 차원에서 랍북자 가족들의 한을 풀어줘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남조선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와 자유조선방송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