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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벌목공 실태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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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05 월 ( 회) 자유북한
2012-08-26 23:47:36   |   View : 12549  
< 북한인권이야기 >
 
인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 보내드리는,북한인권이야기시간의 000입니다. 인민여러분,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곳의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혹시 러시아에 북한 땅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바로 러시아내의 북한 벌목장입니다. 오늘은 러시아 벌목장에서의 벌목공들의 인권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옛 소련과 북한이 처음으로 벌목협정을 체결한 것은 196732일입니다. 그로부터 30년 동안 북한 측은 상당기간 벌목장의 수와 규모를 늘려가며 턱없이 부족한 외화를 획득하고 양질의 목재까지 확보하는 일거양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등장하는 큰 변화를 겪으면서도 북한의 벌목장은 변화를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아 결국 세계의 대표적인 인권사각지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벌목장이라고 하면, 보통 나무를 베어내는 숲속 벌목현장과 목재가공공장, 공장과 관련된 행정본부 등 세 곳을 총괄적으로 의미하는 말입니다. 1990년대에 북한은 이런 벌목장을 러시아의 체그도민을 중심으로 벌목장 15곳을 확보하였고, 북한 노동자를 최대 2만 명까지 벌목장에 파견하여 값싼 노동력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 2만 명이나 되던 노동자들은 해가 다르게 줄어들어 이제는 500여명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물론 러시아가 환경에 관심을 쏟으면서 벌목을 줄여 생산량이 턱없이 줄어든 까닭도 있지만, 러시아내 북한 벌목장의 노동조건이 돼지우리보다 더 열악하고 노동자의 인권이 개만도 못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세계의 주목을 끌게 되어 러시아와의 벌목 재협정에도 계속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자가 줄어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북한노동자들이 북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러시아 사회와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활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그들도 그런 삶을 누리고 싶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열악한 노동조건과 참을 수 없는 인권유린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북한 밖의 세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것을 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들려주는 것, 보여주는 것만 봐야했던 북한 안에서의 삶과는 다르게 북한사회 밖에서의 삶은 천국과 지옥만큼 차이가 난다는 것이 러시아를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벌목공들의 한결같은 증언입니다. 자유를 경험한 벌목장 노동자들은 북한의 부모형제가 귀중하지만 그것을 다 뿌리치고 소련으로, 3국으로 탈출하는 사람이 수 없이 늘어났기 때문에 벌목공 노동자는 계속해서 줄어든 것입니다.
이렇게 탈출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자, 북한 측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잡기만 하면 북한으로 데려가 총살하거나 아니면 다시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정치범수용소에 감금시켰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족쇄를 사용하였으며, 깁스롤 하기도 하고 마취주사를 놓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처사로도 부족하여 북한 당국은 러시아의 북한 벌목장마다 탈출자, 남한 방송을 듣는 자,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동경하고 모방하려고 하는 자, 자유를 그리워하고 사상적으로 병들어 간다고 생각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감금하고, 고문하였으며, 이러한 사람들을 가두기 위한 감옥을 20개 이상 설치하였습니다. 거기에 감금된 사람들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으며, 뚜렷한 죄명도 모른 체 3년씩 5년씩 감금되어 있어야 했으며, 매년 수많은 사람이 이 감옥 안에서 죽어갔습니다.
이렇게 2만 명이나 되는 노동자가 줄어들고, 러시아 내의 벌목장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북한당국은 벌목장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벌목장에서의 외화벌이가 형편없게 되자 벌목공들을 사냥과 건설, 탄광에서의 채탄작업에 투입시켜 노루나 곰을 마구잡이로 사냥하게 하였습니다. 수백 마리의 곰 사냥과 웅담채취로 북한 노동자들은 러시아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으며, 심지어 북한의 벌목공들이 러시아 상점을 털기도 하여 이들은 러시아에서 차가운 눈길을 받으며 차별과 기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민여러분,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험난하고 힘든 고생길을 북한에서는 서로 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러시아에서 3년만 고생하고 북한에 돌아오면, 텔레비젼, 냉장고, 녹음기 같은 전자제품도 살 수 있고, 이밥에 고기 국을 먹는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러시아에 가기 위해 뇌물을 고이고, 아부하는 등 온갖 노력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과거 90년대와 다르게, 어느덧 시간이 흘러 러시아 벌목공의 실태와 인권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식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러시아 벌목공 출신 한동만(43)씨가 뉴욕 JFK공항에 발을 디디면서 러시아 벌목공에 대한 관심은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작년 한국의 조선일보에서는 탈북자의 실태를 생생한 영상에 담아 천국의 국경을 넘다라는 영화(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3편에 등장하는 한동만씨는 조선일보 기자들을 처음 만날 때부터 러시아를 떠나 미국으로 가겠다는 포부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한국의 기자들이 러시아 벌목장을 찾아가 취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벌목공들의 러시아에서의 삶이 어떤지 들려주었습니다. 러시아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탈북자의 난민인정을 하지 않고 있으며, 탈북자의 미국 망명 역시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동만씨는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유엔고등판무관실(UNHCR)의 보호를 받으면서 무사히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으며 미국으로 망명한 첫 번째 러시아 벌목공 출신 탈북자가 되었습니다. 한동만씨는 북한 내 벌목장을 탈출해 자유를 찾아 헤맨지 꼭 10년 만에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인민여러분, 지금도 러시아에는 북한의 벌목장을 탈출하여, 신분을 숨긴 체 일자리도 얻지 못하고 건축현장에서 험난한 일을 해주거나 막노동 등을 하면서 살아가는 벌목장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처형되는 것이 두려워 더 이상 북한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북한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도 없고, 그리고 북한에 있는 가족을 생각해서 제 3국이나 한국으로도 입국하지 못한 체 하루하루를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러시아 내 북한 벌목장에서는 북한으로 돈을 보내기 위해, 돼지우리만도 못한 곳에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강제노동과 인권유린을 참으며 일하고 있는 500여명의 북한 노동자가 있습니다.
지구촌의 인권 사각지대가 되어버린 러시아의 벌목장, 아직도 그 곳에서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벌목공 500여명, 강제 수용되어 인간의 기본권마저 박탈당한 체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오늘도 기대해 봅니다.
 
인민여러분, 어느덧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북한기록보존소는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인권침해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북조선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의 권리를 찾는 소중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북한인권이야기방송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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