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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개혁 개방과 인권정책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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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년 03 월 ( 회) 열린북한
2012-08-20 20:34:33   |   View : 8075  
중국의 개혁 개방과 인권
 
안녕하세요. 당신이 누려야할 권리를 찾아갑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보내드리는 북한인권이야기시간에 장철수입니다.
 
고인물은 썩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고집을 고수하는 사람이나 현실에 안주하고 더 이상 배움에 정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충고할 때 많이 쓰이는 표현인데요. 이 표현은 경제에도 해당되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중국의 경제를 보면 고인물은 썩는다는 말의 교훈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시장을 개방하지 않던 중국은 1970년대에 들어서 큰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1978년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내세워서 개혁 개방을 시작합니다. 흑묘백묘론을 풀어서 말하면,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로 어떤 경제체제이든 잘살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입니다. 즉 이때까지 고수하던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라 하더라도 잘 살 수 있다면 채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개혁개방을 한 후 30여 년 동안 중국은 GDP의 연평균 성장률을 9.8%로 끌어올렸습니다. 같은 기간 세계 평균성장율이 3%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정말 눈부신 발전을 이룬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현재 세계 2위의 수출대국,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습니다. 한국의 한 대학 교수는 중국이 2017년경에는 GDP 6조 달러로 일본을 추월하여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 방송을 듣는 분 중 중국을 방문했던 분이 계시다면 이 발전상을 몸소 체험했을 것 같은데요, 오늘은 중국의 개혁 개방이 중국 인민의 인권 증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중국은 경제발전 결과로 가장 눈에 띄게 바뀐 것은 인권 중에서도 바로 식량권입니다.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현대식 기계화 작업을 실현하여 생산성과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역사적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생활의 기본적 필수품을 획득할 수 없어 최저의 생활수준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을 절대적 빈곤층이라고 하는데 1978년 중국에는 이 절대적 빈곤층이 25천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2천만 명으로 크게 줄었고 기아로 고통 받는 주민들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중국은 절대빈곤층의 해결을 넘어서 이제는 전 세계 경작지의 7%를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구의 22%를 먹여 살리는 농업대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30년 전에는 식량생산량 자체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다양하지 못했지만, 현재 연간 식량 생산량은 5천억kg이 넘으며 품종도 다양합니다. 육고기 생산량도 7천만톤이나 된다고 하니 이밥에 고기를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노동권도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노동권 중 하나인 직업 선택의 자유가 신장되었습니다. 인간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30년 전 중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직장을 배치해주었고, 그러다 보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직장,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는 곳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개혁개방을 통해 기업들이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직업분배제도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1986년 직장분배제도를 폐지하고 노동계약제를 도입하였습니다. 현재 중국 인민들은 자기 스스로 원하는 직업을 선택하여 지원하고 기업은 지원자 중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여 일을 시킴으로써 효율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셋째, 인간은 누구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고 정보를 이용할 자유가 있습니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에서 대학은 국가의 인텔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공산당 이념만을 가르쳤습니다. 당 지도부는 당의 이념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대학생들을 농촌으로 보내 노동을 통한 사상개조만을 강요하였습니다. 또한 외국소설이나 출판물들은 금서로 지정되어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정보를 가진것이 곧 개인의 재산으로 이어지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바뀌면서 이러한 상황은 바뀌게 됩니다. 능력에 따라 쓰임을 받다보니 중국 당국도 더 이상 학생들을 노동에 투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접하는 정보의 양도 많이 늘어 해마다 출간되는 도서는 23만종으로 20년 전 15천종에 비해 약 15배 증가했습니다. 일반 국민들이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국내외 영화만 하더라도 연간 4백여 편에 이르며 인터넷 인구는 무려 25천만 명으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넷째, 이동의 자유도 증가하였습니다. 중국은 중앙계획경제체제를 수립하면서 1958년부터 농민의 도시이주를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나 개혁개방 후 도시의 인구가 증가하여 최근에는 광동, 산동 등 11개의 성 및 시의 도농 간 호구이동 제한을 해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시와 농촌의 이동이 자유로워 진 것입니다. 여전히 호구제도의 존속으로 인한 농민에 대한 인권 침해 문제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30년 전에 비한다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국 국가 내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풍족한 삶으로 인해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중국인수도 해마다 10%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섯째, 선거권도 확대 되었습니다. 1982년부터 인민대표대회 선거 개혁을 통해 현급 단위에서 직접 선거제가 실시되었고 이것이 1987년에는 촌민위원회의 지도자 선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촌민이 자신들을 이끌 지도자를 직접 뽑으면서 민주적 의사결정제도가 발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어집니다.
이와 같이, 시장경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중국 인민들은 인권의 증진을 몸소 체험하고 또한, 자유로운 정보이동을 통해 더 많은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국제사회도 급성장한 중국에게 인권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자 중국 공산당도 이를 일정부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20043월 개최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가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할 것이라는 문구를 헌법에 추가했습니다. 이에 앞선 1997년에는 행정절차법, 변호사법, 국가배상법 등 시민의 권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법률적 토대도 마련하였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중국은 세계적 강대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인권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따라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국제인권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버리고 1980년대 초반부터 이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814월 유엔인권위원회의 정식 회원국이 된 것을 시작으로 여성차별철폐협약,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등 다수의 국제인권협약에 가입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유엔세계여성대회와 엔지오 포럼 등 인권관련 국제회의의 유치를 통해 인권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과 정책을 피력하기도 하였습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개방 개혁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룬 중국을 닮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언론사 중 하나인 동방조보에 따르면 2006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 했을 당시 중국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충격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하며 "중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거울삼아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북한 주민들도 개혁 개방을 통해 이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더 나아가서 더 많은 권리를 누리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국제 엔지오 소개 시간으로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는 핸디캡 인터내셔널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로부터 북한당국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법기관의 당일꾼들 중 인권침해를 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과 이들의 인적 정보를 수집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지 항상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 북한인권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