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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엔지오소개-핸디캡 인터내셔날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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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년 03 월 ( 회) 열린북한
2012-08-20 20:36:09   |   View : 9063  
국제 엔지오 소개-핸디캡 인터내셔널
 
안녕하세요. 당신이 누려야할 권리를 찾아갑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보내드리는 북한인권이야기시간에 장철수입니다.
 
오늘은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시 한편을 소개하면서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꽃들이 비를 맞으며 이야기한다. 어디가고 싶어도 뿌리가 박혀 못 간다고 한다. 비 그친 뒤 날아오는 벌이 말한다. 너도 언젠가 씨가 되어 날아간다고.”
 
시를 들으신 소감이 어떠한가요? 저는 가슴 가득 차는 희망을 느꼈는데요. 이 시는 서울 광화문의 시인이라 불리는 정재완씨의 시입니다. 한국의 유명한 가수 하덕규씨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정재완씨를 만나고 싶으면 서울의 광화문으로 가시면 됩니다. 광화문 구석에서 부채, 액자 등을 팔고 있는 몸이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 바로 시인 정재완씨입니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뇌성마비 지체장애 1급 진단을 받은 장애인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1분이면 쓸 글을 한 시간이 걸려야 겨우 쓸 수 있을 정도로 손이 자유롭지 못 합니다.그는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시를 쓰고, 액자를 팔아 어렵게 마련한 돈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이라크와 북한의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쓰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에 500만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정재완씨는 자신의 장애 딛고 일어서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 중에 한명입니다. 오늘은 정재완씨 같은 장애인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써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온 엔지오, 핸디캡 인터내셔널과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979년 캄보디아와 태국국경에서 난민들을 치료하고 있던 두 명의 프랑스 의사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지뢰에 의해 부상을 입고 심지어는 신체를 절단당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들의 고통을 그저 지나칠 수 없었던 이들은 1982년 태국과 캄보디아에 몰려든 난민들 중 특히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핸디캡 인터내셔널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장애인들을 치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들을 예방하는데 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뢰로 인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보고 간과할 수 없었고, 더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다섯 개의 단체와 함께 1992년 국제지뢰금지캠페인을 창립했습니다. 그 공로가 인정되어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하지만 노벨평화상 수여보다 이들을 더 감동케 했던 것은 아마 그 해 122개의 국가가 다시는 대인지뢰 사용, 축적 및 운반하지 않겠다고 오타와 협약에 가입한 일일 것입니다.
 
핸디캡 인터내셔널이 북한을 돕기 시작한 것은 1999년입니다. 당시 북한에 있는 조선장애자지원협회에서 핸디캡 인터내셔널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핸디캡인터내셔널은 북한지역의 장애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핸디캡 인터내셔널은 먼저 장애인들의 신체적인 불편함을 덜어주는 사업을 벌였습니다. 함경남도 함흥에 보철생산공장을 설치한 것입니다. 보철은 다른 말로 인공손발로 손과 발이 없는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 줄 수 있는 기구입니다. 또한 장애인들의 겉모습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도록 신체를 고쳐주는 의료기 생산체계를 복구하는 일도 하였습니다. 이 분야는 북한에서 거의 10여 년 동안 정체상태에 있던 분야입니다. 이 지원 사업을 통해 1,500 명의 장애자들이 정형외과 시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핸디캡 인터내셔널은 또한 북한에서 시행된 적이 없는 치료법인 물리치료를 시행하여 장애인들의 신체 재활을 돕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북한 전역에 다리가 불편한 1,000명에게 목발을, 걷지 못하는 200명에게 휠체어를 지급하고 장애인 관련 장비들을 제공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핸디캡 인터내셔널의 도움 없이도 북한이 독립적으로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도록 전문가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장애인의 인공손발 만들 수 있는 24명의 보철기술자를 양성하고 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4명의 교육자를 양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요청에 따라 활동을 시작한 핸디캡 인터내셔널은 북한 당국의 통제로 적극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게다가 북한 당국이 지난 2005년 말 북한에서 활동하는 국제기구와 국제 엔지오들에게 철수를 통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핸디캡 인터내셔널은 수많은 장애인들이 아직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철수 대신 유럽연합 소속으로 들어가서 북한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에 핸디캡 인터내셔널이라는 자신의 단독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고 EU 건강 단위 7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핸디캡 인터내셔널이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장애인을 돕는 이유는 장애인들도 보통 인간과 같이 존엄성과 인권을 부여받아 태어난 존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장애인들이 우리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들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심지어는 직접적인 차별까지 가하기도 합니다. 또한 개별 국가 내에서 장애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들은 있었지만 보호차원을 넘어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그들을 존중하는 국제조약은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장애인 인권을 위해 일했던 수십개의 엔지오들의 노력으로 2007년 장애인권리조약이 유엔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북한의 장애인 인권실태는 어떠했을까요? 핸디캡 인터내셔널이 북한에서 활동하기 전인 1990년대 이전의 장애인 인권 현실은 매우 처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은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이들을 사회의 해로 여겨 한곳에 가두어 두었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난쟁이들이 종자를 퍼뜨리면 안 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두라는 지시를 내렸고 이에 따라 함경북도의 종성, 함경남도 영광군 등에 장애인들을 격리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우려표명과 핸디캡 인터내셔널 등 많은 엔지오들의 노력이 쏟아지는 가운데 북한 당국은 20036장애자보호법을 처음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이 법은 장애자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하며 정상인과 동등하게 사회적 정치적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장애인들은 의료기관에서 무상치료를 받을 수 있고, 인민/고등중학교육에서 제외당하지 않으며, 대학입학 기회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 제정에 앞서 북한에도 장애인들의 권리보호를 위한 엔지오가 결성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핸디캡 인터내셔널에게 도움을 요청한 조선장애자지원협회입니다.
이와 같이, 북한 당국은 지난 10여 년간 장애인을 위한 법적, 사회적 장치들이 마련하였으나 실제로 장애인들이 그 장치에 의해 혜택을 받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장애인도 한 인간으로써 대우받으며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면 매우 좋겠지만, 법과 실제가 차이가 난다면 조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핸디캡 인터내셔널도 북한의 장애인들을 위한 법적 장치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니 장애인들을 위한 밝은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장애인들도 일반 주민들과 함께 동등한 인간으로써의 권리를 누리는 그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한 구절을 읽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장애인은 장애로 인한 어떤 종류의 차별 없이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완전히 실현할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한다.”
다음 이 시간에는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국군포로의 권리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로부터 북한당국에 의해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법기관의 당일꾼들 중 인권침해를 한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과 이들의 인적 정보를 수집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지 항상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상 북한인권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