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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방송

북한인권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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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실태 첫번째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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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년 03 월 ( 회) 열린북한
2012-08-20 20:36:50   |   View : 7953  
국군포로 실태
 
안녕하세요? 당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갑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북한인권이야기시간의 장철수입니다.
 
포병 소위 조창호, 군번 212966! 국방부장관님께 무사히 귀환했음을 신고합니다.”
 
19941025일 오후 3시 한국 국군통합병원 입원실, 43년만에 돌아온 64세의 조창호 소위가 위문차 방문한 국방부장관에게 부동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며 귀환신고를 하였습니다. 북한에서의 힘든 생활로 병들고 불편한 몸이었지만, 황급히 일어나 군인의 자세와 예절을 갖추어 43년 만에 임무완수를 하고 무사히 귀환한 것을 보고한 것입니다. 그는 1951910일 중부전선에서 전사한 것으로 처리되어 국립묘지에 위패까지 있었지만, 43년 만에 살아 돌아왔습니다.
 
조창호 소위는 대학교 1학년 재학 중 6.25전쟁이 나자, 자원입대하여 1951년 소위로 임관되었습니다. 그 이후 포병연대 관측장교로 임무를 수행하던 중 그해 5월 인제전투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체포된 후, 북한군의 설득이 있었지만, 협조하지 않았고, 오히려 탈출하려다 잡혀 월남기도반동분자죄로 교화소에 수감되어야 했습니다. 이후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탄광에 배치되어 생활하다가 1971년 규폐증 진단을 받고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되었고, 199410월 북한을 탈출하여 배를 타고 한국으로 입국하였습니다. 국군포로 조창호소위의 북한탈출을 시작으로 북한에 있던 40명이상의 국군포로들이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조창호 소위의 한국으로의 탈출 결심은 북한에 억류되어 있던 국군포로들에게 용기를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으로 귀환 한 후 자신의 국군포로 삶을 돌아온 사자라는 책으로 출판하였고, 미국에서 개최한 북한인권청문회 등 다양한 모임에 참석하여, 국군포로이기 때문에 당한 힘들었던 삶을 증언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활동을 통해 북한에서의 국군포로 실상이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한국에 온 여러 국군포로들도 그들의 삶을 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창호 소위는 20061119일 병으로 76년의 생을 마무리 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정부·군인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오늘 북한인권이야기 시간에서는 조창호 소위처럼 6.25전쟁 때 한국 국군으로 참여하였다가 북한에 억류되어 차별과 감시 속에 살고 있는 국군포로들의 인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군포로의 인권은 두 시간에 나누어서 방송될 예정이며, 오늘은 첫 시간으로 국군포로문제의 의미와 북한의 입장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은 정확히 국군포로의 의미를 아시는지요? 혹은 인민군 포로에 대해서 들어 보신 적이 있는지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군포로와 인민군에 대해서 짧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국군포로는 6.25전쟁 때 한국군으로 참전했다가 북한군이나 중공군에 포로가 되었던 군인들을 말하며, 인민군 포로는 참전했다가 한국군이나 미국군 혹은 UN군에 포로가 된 군인들을 의미합니다.
 
19536.25전쟁이 끝난 후 국군포로와 인민군 포로의 본국송환은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전쟁포로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제네바 협약이 있습니다. 이 협약 118조에서는 포로는 적극적인 적대행위가 종료된 후 지체 없이 석방되고 송환되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과 북한은 휴전협정 당시에 모든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기로 합의를 하였다면 쉽게 문제는 해결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쟁포로 문제를 협상하는 과정에서 유엔측과 북한측의 대립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입장인 유엔측은 송환을 원하는 인민군 포로만을 송환시키는 원칙을 제시하였고, 북한측은 모든 인민군포로의 송환을 요구하였습니다. 그 당시 인민군 포로 중 일부는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있던지, 다른나라로 가겠다는 포로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명단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유엔측이 북한에 요구한 국군포로 명단숫자와 북한이 제시한 국군포로 명단숫자와 큰 차이를 보였고, 북한측은 유엔측이 요구한 만큼의 전쟁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한국은 북한을 가지 않겠다고 한 인민군을 제외한 나머지 인민군들을 북한으로 송환시킨 반면, 북한은 국군포로 중 일부인 7,142명만 한국으로 송환 시켰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북한은 전쟁포로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50년 이상을 보냈고, 그 당시 송환되지 못한 많은 국군포로는 여전히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정부 통계에 의하면, 고령으로 인해 국군포로들이 많이 사망하였지만, 그러나 여전히 북한에 살아있는 국군포로는 560여명정도 되며, 한국에 귀환한 국군포로는 7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국군포로들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에서는 국군포로들의 송환에 대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이 시간에 다루기로 하고, 먼저 국군포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국군포로를 아무것도 모르고 한국의 군대에서 종사하다가 포로가 된 후 북한이 진짜 조국이라는 것을 깨닫고 귀화한 사람들혹은 미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의 의미로 해방 전사라는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따라서, 한국으로의 송환보다는 일정한 사상교육을 통해 북한 인민군으로 입대 하게 하는 등 북한 내에 억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북한에는 단 1명의 국군포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국군포로 가족들은 지속적으로 북한에서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요구하였고, 한국정부는 2000년 제1차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제기하였지만, 북한은 여전히 똑같은 입장만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것은 20064월 평양에서 열린 제18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이 문제가 다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한 만큼의 결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여러분 중, 주변에 국군포로에 대해서 들어보시거나 혹은 직접 보신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국군포로 송환에 대해 큰 노력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북한에서 차별과 감시속에 살던 국군포로들은 탈북하여 한국의 가족들에 왔지만, 여전히, 여러분의 이웃으로 지내고 있는 국군포로들은 북한에서 어려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족이 있는 본국에 돌아가지 못하게 강제로 억류해 놓는다면 얼마나 그들이 그립고 보고 싶겠습니까? 또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그리움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국군포로들은 본인이 원한다면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도 요구하는 것이며, 이는 그들이 갖고 있는 권리입니다.
 
오늘은 북한에 억류되어 본국으로 오지 못하는 국군포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주고 있는 한 구절을 낭독해 보겠습니다. 전쟁포로에 대한 제네바 협약 제 118조에서는 포로는 적극적인 적대행위가 종료된 후 지체 없이 석방되고 송환되어야 한다.”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북조선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찾는 오늘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북한인권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국군포로의 실태 두 번째 시간으로 국군포로의 북한에서의 인권과 한국의 입장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