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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방송

북한인권 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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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실태 두번째 ( 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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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년 04 월 ( 회) 열린북한
2012-08-20 20:37:29   |   View : 8235  
국군포로의 실태
 
안녕하세요? 당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갑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북한인권이야기시간의 장철수입니다.
 
2005422,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몇몇의 국군포로들이 대표로 미국 의회에서 북한 내 국군포로 실상에 관해 증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같은날 199410월 북한을 탈출하여 처음으로 한국에 입국한 국군포로 조창호 소위는 미국의 정치인들 앞에서 국군포로로써 북한에서 겪은 고통과 참상에 대해서 자세히 증언하였습니다. 조창호 소위는 이날 증언을 통하여 1951년부터 13년간 이불과 베게도 없이 포로수용소와 교화소에서 지낸 힘든 생활을 회상하며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국제사회가 정성껏 지원 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2000년에 입국한 또 다른 국군포로도 이 증언시간을 통하여 북한 당국이 국군포로들을 한국으로 송환하지 않고 전쟁 복구를 위한 노동인력으로 이용해 착취를 일삼았으며, 본인의 자녀들 역시 학교진학과 직장배치에 제한을 받는 등 수 많은 차별을 당해야 했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이날 이 자리에 참석한 한국을 비롯한 여러국제단체들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본인들이 원한다면 반드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오늘 북한인권이야기 시간에서는 어제에 이은 두 번째 시간으로 국군포로들의 북한에서 인권실상과 이들을 위한 한국정부의 노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방송을 통해서 국군포로 문제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살펴보았습니다. 국군포로문제는 국제사회에서도 서서히 관심을 가지고 있을 많큼 중요한 문제이지만, 여전히, 북한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여러분 중 살고 계신 주변에서 국군포로의 생활을 직접 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혹은 본인의 토대가 국군포로 가족일수도 있고요.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국군포로들의 북한생활은 어떠한가요? 북한에서 대우가 좋은 삶인가요?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국군포로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을 심층담화를 통하여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알려진 국군포로들의 북한 생활은 차별과 감시로 인권을 침해받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한국에서 파악한 북한에 억류되어 현재도 살아있는 국군포로들은 560여명정도 된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이미 온 국군포로들은 70여명이나 됩니다. 먼저 현재까지 알려진 국군포로들의 삶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국군포로들은 평생 쉼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로 직장배치를 육체적 노동 강도가 센 탄광, 광산에 배치되어 채탄공과 굴진공으로 일을 합니다. 그리고, 중노동이 끝나면 생활총화, 사상교육으로 북한에 대해서 교육을 받아야만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몸이 피곤하여, 다른 사회생활 할 여유가 없다고 한국에 온 국군포로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국군포로들은 탄광노동자들이기 때문에 매일 탄광에 나가서 힘든 노동과 정치학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쉬는 날이면, 집에서 조금이라도 더 쉬려고만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혹 국군포로가족들이 있다면 그들의 생활을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매일 중노동과 사상교육에 지쳐있는 그들의 삶은 엄연히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삶입니다.
 
그러나, 국군포로들은 이런 생활에 여유가 없었던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북한사회 내에서 감시와 차별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 중 대부분의 결혼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토대와 성분이 좋지 않은 여자들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국군포로들은 토대가 안좋은 부류로 구분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선노동당 입당도 쉽지 않았지만, 몇몇의 국군포로들이 입당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보여주기 위해서 입당시켜주는 것이지 간부는 할 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당원이었던 국군포로 증언에 의하면 그 국군포로는 47살에 당원이 될 수 있었는데, 본인을 당원으로 입당시킨 이유는 대부분의 국군포로들은 일반 북한주민들보다 일을 너무 잘하니깐, 형식상으로 입당을 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원이 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당원이 된 뒤에도 감시는 계속 있었다고 합니다. 국군포로들은 직장 내에서도 출신성분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일을 잘해도 인정받지 못하며 만약 조금만 잘못해도 큰 처벌을 받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별은 국군포로 본인들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국군포로 자식들까지도 대학입학, 군 입대 등의 차별을 당했습니다. 한국에 온 한 국군포로는 내가 한국출신이라고 해서 자식들이 차별을 많이 받았으며 가끔씩 자식들은 자기를 원망하기도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큰딸은 공부를 잘해서 사범대학 추전을 받았지만, 국군포로 성분이 걸려 가지 못했고, 맏아들은 군대를 가려 했으나 큰딸과 같은이유로 갈 수 없었고, 둘째아들은 무전학교를 졸업하여 배타는 무전수를 해야 했지만, 국군포로 아들이라고 배를 타지 못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자식들까지도 차별받는 모습에 북한에서 사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감시는 철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심지어 주변의 이웃들과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국군포로들은 모두가 다 요시찰대상이기 때문에 2-3명만 모여서 이야기해도 바로 밀정들에 의해 보위부에 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북한인민여러분!
지금까지의 국군포로들의 북한에서의 생활이 평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의 이야기에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보장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분과 토대가 좋지 않다고 하여 그 사람들을 일상생활, 직장생활, 심지어 자녀들의 장래까지 막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에서 옛날부터 성분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는 그래왔으니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간 한명 한명에 대한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권리는 중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북한은 국군포로들의 생사확인 및 송환에 대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과 달리 한국정부에서는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송환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2006년 국군포로 송환 문제를 법으로 정하여서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서는 현재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의 실태와 송환방법 그리고 한국으로 온 국군포로들의 한국생활지원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6.25 국군포로 가족회라는 시민단체가 세워져서 이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는 정부뿐 만 아니라, 일반국민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북한에 억류되어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국군포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시간에 낭독했던 권리를 다시 한번 낭독해 보겠습니다. 제네바 협약 제 118조에서는 포로는 적극적인 적대행위가 종료된 후 지체 없이 석방되고 송환되어야 한다.”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서는 부당하게 고통을 받았던 인민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북조선의 인권상황이 개선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를 찾는 오늘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북한인권기록보존서의 북한인권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최근 북한인권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